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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마을

마을01
사촌마을1

선비와 학자들의 고장 "사촌마을"

사촌마을은 의성군 점곡면 사촌3리와 서변2리 일부에 걸쳐 있는 곳으로 신라 때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혀왔다.
안동김씨와 풍산류씨, 안동권씨의 집성촌으로 의성 북부의 반촌이다. 특히 송은 김광수, 서애 류성룡, 천사 김종덕 등 숱한 유학자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선비와 학자들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마을 숲이 유명하고, 30여 동의 전통가옥이 잘 가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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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정승과 사촌마을(1)

사촌마을2
사촌마을은 김자첨(1369~1454)이 안동에서 옮겨와 개척한 마을이다. 송은 김광수, 서애 류성룡 등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대과에 급제한 사람이 18명, 소과에 급제한 사람이 31명이나 된다.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이 마을에 3명의 정승이 태어난다고 한다. 신라시대 나천업, 조선시대 류성룡에 이어 또 한 사람이 더 나올 거라고 주민들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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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정승과 사촌마을(2)

사촌마을3
사촌마을은 가로숲을 조성하면서 명당으로 거듭났다고 말해 진다. 영남지역의 8명기(名基)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된 마을이지만, 집들은 대개 100년 안팎의 건물이다.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켰다 해서 왜군들이 불태웠고, 구한말 병신의병이 일어나자 일본군이 또다시 마을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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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당

사촌마을4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택은 1582년에 지은 만취당 (보물 제1825호)이다. 조선 전기 문신이며, 퇴계 이황의 고제였던 김사원이 1582년(선조 15)부터 3년간에 걸쳐 세운 건물로, 만취당은 김사원의 호다. 만취당은 사랑채 격이다. 본채에서 떨어져 있다.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갖춘 대형 건물이다. 만취당의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진다. 마을 전체가 불타고 허물어짐을 거듭했으나 그 혼란 중에서도 의연하게 버텨온 만취당은 흡사 이 마을의 기개를 보여주는 듯 단아하면서도 장중하다.
본채에는 사랑채가 따로 있는데, 규모가 매우 작다. 객을 맞을 별도의 만취당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건물이라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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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산정사(1)

사촌마을5
후산정사는 만취당을 추모하고 후손들이 공부하고 수양하는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경내에는 강학을 주로 하는 정자(후산정사)가 있고, 향사를 지내는 사당, 그리고 음식을 제공하는 주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는 수령 350년이나 된 향나무 두 그루와 회화나무 고목이 있어서 고택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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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산정사(2)

사촌마을6
사촌마을은 물이 맑고 지세가 순탄해서 장수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1832년 경상도읍지에는 이 마을을 전국의 3대 장수촌의 하나로 꼽기도 했다. 1896년 병신의병의 본거지로 폐허가 됐던 이 마을은 이후 꾸준히 전통문화 재건을 통해 각 고택들이 속속 복원됐다. 만취당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천연기념물과 보물을 보유, 오래된 마을의 격을 더욱 높였다고 주민들은 자부심을 나타냈다. 또 사촌마을전시관과 의성의병관을 건립해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제작 : 의성군, 영남일보 공동기획 스토리텔링 PDF 다운로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