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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고운사01

저승의 염라대왕이 묻는다.
“자네, 고운사(孤雲寺)는 다녀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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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 하늘에 이르면 염라대왕이 그리 묻는다고 했다.
“고운사엔 다녀왔는가?” 해동제일의 지장도량이라 불리는 고운사 일주문에 발을 들여야 염라대왕의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의성의 동북 끝단 구계리에는 ‘구름을 타고 오른다’는 등운산이 있다. 산의 서쪽 사면을 타고 흘러내린 산자락은 반쯤 피어난 연꽃 형상이다. 그 꽃 속에서 물이 솟아 안망천으로 흐르는데 꽃이 핀 자리, 천()이 시작되는 자리에 681년 의상대사가 절을 짓고 고운사(高雲寺)라 했다.
고운사02

고운사 가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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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신라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고운은 12세 때인 868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6년 만에 과거에 합격했고, 여러 벼슬을 지내며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최치원은 42세 즈음 관직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다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고운사의 가운루와 우화루는 그가 유랑할 적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가운루의 원래 이름은 가허루(駕虛樓)였다. 이는 도교 사상이 담긴 이름이다. 최지원이 품었던 이상세계로의 간구 또한 깃들어 있다.
고운 최치원이 거처간 뒤, 그의 자()를 따 ‘높은 구름(高雲)’을 뜻하던 고운사는 비로소 ‘고독한 구름(孤雲)’ 고운사가 되었다.
고운사03

공민왕의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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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개의 가운루 현판 중 누각 바깥 처마에 걸린 행초서 글씨는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공민왕은 내란을 겪으면서 노국공주가 세상을 뜨자 실의에 빠져 전국을 유람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고운사를 찾아 현판의 글씨를 남겼다. 구름에 몸을 싣고 세상사를 잊고 싶어 한 당시 공민왕의 심경이 담긴 어필이다. 노국공주를 잊지 못하는 공민왕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운사04

연수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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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는 고려시대와 조선조에 걸쳐 여러 번 중창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군의 전방기지로 삼았다.
특히 연수전(延壽殿)은 영조 20년(1774)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전각으로 1887년 다른 전각들과 함께 중수됐다. 1902년에는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새로 지었다. 약사전 맞은편에 품위 있게 낡은 연수전이 보전되어 있다. 나침반의 바늘이 꼼짝하지 않을 정도로 기가 센 자리라 한다. 대문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태극 문양에 문득 저릿하다.
일제강점기 동안 고운사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다.
고운사05

연수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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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사찰의 재산이 망실되고 당우는 쇠락했지만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다.
의성대사가 고운사를 세운지 천 년이 더 지나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을 테고 지금도 나날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찰나에 갖는 고운사에 대한 영원한 감각은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고요한 균형이다.
중천왕문 속 오롯한 일주문을 지나며 생각한다. 염라대왕의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일까. 긴 솔굴을 내려가는 동안 꽃비와, 극락과, 질문에 대한 질문이, 호랑이의 눈동자처럼 내내 쫓아온다. 그것은 간혹 잊을 수는 있지만 결코 잊지 못할, 명부전이 내려준 미션 혹은 화두와 같은 것이다. 아. 해동 제일의 지장 도량이라더니.
제작 : 의성군, 영남일보 공동기획 스토리텔링 PDF 다운로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