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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마을가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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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을지키는 천연기념물 "사촌가로숲"

가로숲 이미지1
사촌마을 뒷산(매봉산)에서 이 들판을 가로질러 미천까지 남북으로 길게 숲이 늘어서 있다. 바로 ‘가로숲’이다.
가로숲이라는 이름은 사촌마을과 들판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조성한 숲이라서 붙여졌다. 마을 서쪽에 있어 서림(<西林) 으로도 불린다. 그 길이가 1㎞가 넘는다. 전체 넓이는 4만3천519㎡(약 1만1천817평)다. 수령이 300~600년 되는 다양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숲의 역사를 가늠케 하는 모습으로 쭉쭉 뻗어 올라있다. 수종도 다양하다.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10여 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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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숲에 찾아온 계절(1)

가로숲 이미지2
숲은 사촌마을 뒷산에서 흘러나오는 개천(대곡천, 大谷川)의 양안에 조성되어 있다. 폭은 대략 40m는 되어 보인다.
오래된 숲답게 고목이 빼곡하다. 밀림을 걷는 듯 제법 깊은 맛이 있다. 고목들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에 느티나무 등을 더 심어서 젊고 푸른 나무들이 고목들 사이에서 꽤 기세를 뻗어 올리고 있다.하천의 물이 찬 데다, 숲이 울창하게 덮고 있어서 최고의 여름 피서지로 소문이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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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숲에 찾아온 계절(2)

가로숲 이미지3
특히 잡목이 많아 가을 단풍이 곱기로 유명하다.여기저기 떨어지는 도토리 때문일까, 다람쥐들이 자주 눈에 띈다. 토끼도 있다고 한다. 숲이 갖는 푸근한 품새로 새도 많고 곤충도 자주 눈에 띈다. 왜가리가 자주 날아 앉는다. 밤에는 소쩍새도 운다. 황조롱이 등도 깃을 친다. 대략 20여 종의 새들이 숲을 근거지로 삼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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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림(1)

가로숲 이미지4
사촌 가로숲은 이곳에 입향한 김자첨이 처음 조성했다. 숲을 조성한 것은 마을을 위한 특별한 배려였다.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이 우선 고려됐다.
숲을 조성하기 전 마을 뒷산으로는 문필봉이 버티고 있고 왼쪽으로는 좌산이 있어 좌청룡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오른쪽은 광활한 들판이어서 우백호가 없는 지형이었다. 이 때문에 비어 있는 오른쪽에 우백호 격으로 가로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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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림(2)

가로숲 이미지5
아울러 이 숲으로 겨울의 매운바람이 곧장 마을로 들어오는 걸 막으려 했다. 큰물이 지면 수시로 유실되는 하천둑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개울은 물길이 짧고 모래가 많다. 비가 오면 금방 많은 물이 흐르지만, 이내 땅속으로 스며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물길도 보호하고 바람도 막기에는 숲을 조성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이 숲에 느티나무와 팽나무, 상수리나무가 많은 이유는 오래 살면서 뿌리와 가지의 세력이 좋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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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숲길을 걷다.

가로숲 이미지6
사촌 가로숲은 1999년 4월에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됐다. 숲은 예부터 신성한 공간으로 대접받았다. 사촌 가로숲도 그런 신성공간이었다.그래서 전설도 생겨나나 보다. 가로숲이 있는 사촌마을은 서애 류성룡의 외가 동네다. 1542년 서애의 모친이 친정인 사촌마을에 다니러 왔다가 이 숲에서 서애를 출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사촌마을은 삼정승이 나는 명당터로 신라시대 나정승 이후 두 명의 정승이 더 나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특히 ‘외손이 잘되는 터’로 알려져 딸들이 친정에 해산하러 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당시 서애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용꿈을 꾸고 앞으로 크게 될 아이라 믿으며 친정인 사촌마을에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한다. 하지만 친정아버지는 출가외인에게 명당 터의 기운을 줄 수 없다며 내치고 만다. 결국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던 중 사촌 가로숲에서 서애를 출산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친정에서 해산을 했을 테지만, 서애가 워낙 출중한 인물이라 이런 전설이 만들어진 것일 게다.
제작 : 의성군, 영남일보 공동기획 스토리텔링 PDF 다운로드 다운로드